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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잘 보내셨는지요
김진하 기자 입력 2014년 04월 30일 18:13분316,867 읽음
어느새 3월입니다. 올 겨울은 다행히 큰 추위가 없었지만 동해안 지방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다른 해보다는 비교적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쪽으로 와야 할 추위가 미국 쪽으로 가버려서 외신에 나오는 북미 지역은 이번 겨울이 혹독했나 봅니다.

추운 겨울밤에는 따뜻한 아랫목이 최고인데 요즘은 아랫목이라는 개념이 사라져서 아쉽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방학 때만 되면 외갓집에서 보내곤 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나무로 된 생선을 담는 상자를 만드는 공장을 하셨는데 그 안은 나무와 톱밥이 늘 쌓여 있었습니다.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 일을 마치면 막걸리 한잔으로 그날을 마감하셨습니다.

그 막걸리를 받아오는 일이 어린 제 담당이었는데 덕분에 일찍 막걸리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에 주전자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시고는 취해 얼굴이 발그레하고 속은 울렁거려 돌아가니 할아버지는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으시고 할머니는 꾸중을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나무판 여러 개와 철사를 엮어서 만든 썰매로 꽁꽁 언 개천을 팡팡 밀던 그곳은 온통 하얗고 고요하며 아름다웠습니다. 종일 눈과 얼음과 씨름하며 놀다가 어두워지면 할아버지 막걸리를 몰래 한 모금하고 뜨끈한 아랫목에 눕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삼촌들을 위한 밥상이 알록달록한 밥상보에 덮여 있고 아궁이에서 때는 나무 냄새를 폴폴 맡으며 잠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요즘 시골에도 대부분 보일러가 있어 아랫목이 있는 집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신 그 자리에 동네마다 있는 찜질방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저도 가끔 찜질방을 가곤 하는데 찜질을 하고 땀을 쏙 빼고 난 후에 목욕을 하고나면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개운함을 맛봅니다. 몸속에 있는 피로의 찌꺼기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니 몸과 머릿속이 맑아지고 기분 또한 상쾌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끔씩 느껴보는 그런 상쾌함은 일상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활력소가 됩니다. 온열 요법이 따로 없습니다.

하얗게 눈 덮인 강변에서 썰매를 타던 그 시절에 나는 걱정도 불안도 상처와 아픔도 없었습니다. 손과 발뒤꿈치가 터 있고 옷의 소매는 콧물자국이 남아서 지저분했지만 열이 심하게 나지 않는다면야 제아무리 춥다 한들 썰매타기를 그만둘 일은 없었습니다. 감기 정도는 그저 며칠 훌쩍이며 다니면 그만이었고 수두나 볼거리도 어울렸던 녀석들끼리 돌아가면서 걸리면 그대로 또 그만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열병들은 계절처럼 다가왔다 지나가면서 키가 자라고 어깨가 넓어지고 어른이 되어갔습니다.

겨울을 무사히 마쳤다면 우리에게 봄이 시작되는 순간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됩니다. 지금 투병을 하고 있다면 참으로 소중한 계절입니다. 여러분도 건강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지금 이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용기와 활력을 얻으시길 바래봅니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뿌옇게 하늘을 가리는 먼지가 우리의 일상을 괴롭힙니다. 일본에서는 방사능 오염, 중국에서는 미세먼지, 중간에서 사는 우리나라는 양쪽 모두의 오염 때문에 먹거리부터 숨 쉬는 일까지 신경 쓸 게 많습니다. 그래도 산을 오르니 숲 속의 공기는 여전히 상쾌했습니다. 좋은 음식과 좋은 공기로 다시 시작되는 새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월간암(癌)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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