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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모두들 안녕하시기 바랍니다
장지혁 기자 입력 2014년 02월 28일 13:49분361,512 읽음
고려대학교 학생이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를 학교에 붙이면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시리즈는 젊은 사람들의 감성과 세태에 대한 걱정스러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삶이 너무도 척박하여 남의 안녕에 대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 학생의 대자보는 많은 사람들의 양심에 조그마한 울림을 만들어 퍼져 나가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걱정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땅덩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다보니 여유가 없어서 자신의 안녕조차도 잊고 있는데, 남의 안녕까지 신경 쓰면서 사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서민이라는 이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쁘고, 심한 노동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한 달을 채우고 받은 월급은 채 한 달을 살 수 있을 만큼만의 빠듯한 금액이며 운이 나빠 사고가 생기거나 병이라도 난다면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밥을 굶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 라고요. 그러나 우리가 밥을 못 먹어서 허탈함에 빠져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란 밥 말고도 꿈과 희망을 먹어야 살맛이 나는 법인데 지금이 그런지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됩니다.

대자보에는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과 한숨, 또 서민들의 아픔을 적어 놓았습니다. 이 대자보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도미노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글들을 적어서 각자의 대자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결론은 언제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입니다. 노동자, 서민, 고시생부터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안녕해야 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암과 투병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안녕이 시급한 입장입니다.

80세를 산다고 하면 1/3이 암을 겪는다는데도 암환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암을 진단 받고 치료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직장에 그 사실을 모두 털어 놓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을 떠나게 됩니다. 또 병을 치료하는 일이 몸도 힘들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뉴스에서는 암환자에게 아주 커다란 혜택을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직접적인 암 수술이나 항암, 방사선 비용만이 암 치료의 전부는 아니라서 실제 암환자와 가족이 부담하는 비용은 그 몇 배에 달합니다.

제도권이든 비제도권이든 암환자에게는 불친절합니다. 많은 궁금증이 있고, 지금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싶지만 대부분 의사와 만나는 시간은 길어야 3분 이내입니다. 이것이 암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입니다. 나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확실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암환자에게는 암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지방에 사는 암환자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의 큰 병원으로 암을 치료하기 위하여 많이들 올라옵니다. 항암치료는 동네에서 받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이 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입니다. 항암치료는 입원해서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통원치료를 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이 서울에 친척이라도 있으면 신세를 지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은 병원 앞에 ‘환자방’이라는 곳을 갑니다. 쪽방처럼 좁은 공간에서 약을 처방 받아 치료합니다.

암 치료 과정에서의 불합리한 일들도 생깁니다. 월간암을 구독하는 독자들의 전화를 받으면 대부분의 자신의 불합리한 상황과 그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저희도 마땅한 대책은 없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암환자들은 다시 생기를 찾습니다. 그만큼 암과 투병하는 분들은 외롭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암환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동변상련의 아픔을 나누면서 투병해 갑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욱 아파 보여서 애처롭습니다. 투병의 모든 몫은 환자의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8살짜리 소년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페이스북에 사연을 올렸는데 크리스마스이브에 각지에서 만여 명의 사람들이 그 소년의 집 앞에 모여서 캐럴을 불러주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아픈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암 때문에 지치고 힘든 몸을 서로의 사랑으로 보듬어서 녹일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도 나의 안녕을 묻지는 않지만 가장 안녕해야 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월간암(癌)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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